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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징계·공권력·공포감 조성 비판보도 봉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정권이 임명한 경영진에 저항하다 기소된 언론인은 61명, 사내 징계를 받은 언론인은 해고 8명을 포함해 249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비취재·비제작 부서로 전보되거나 지방으로 쫓겨갔다.

‘유배’된 언론인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최승호 전 MBC 「PD수첩」 PD, 김용진 전 KBS 탐사보도팀장, 임장혁 전 YTN 「돌발영상」 팀장, 김진혁 전 EBS 「지식채널e」 PD가 지난 30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명박 정권의 시사보도 탄압에 대한 증언과 대안’ 토론회에서 언론 탄압의 실태를 증언했다.


김용진 기자는 “언론이 정권을 견제하도록 했다면 정부가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사프로그램 탄압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최승호 PD는 “대통령 선거의 승자가 방송까지 독식하는 현 체제를 바꾸기 위해 공영방송 사장 선임의 새로운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진 기자=2008년 8월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뒤 대규모 인사가 있었다. 저는 부산으로 발령 났고 탐사보도팀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는 스포츠 중계팀으로 갔다. 탐사보도팀 기자의 절반을 비취재 부서로 흩어놓은 것이다. ‘민감한 아이템을 다루면 다친다’는 공포감을 사내에 유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본다. 인사는 정말 악랄한 언론 통제 수법이다.


최승호 PD=MBC 시사교양국도 KBS 탐사보도팀과 비슷한 일을 당했다. PD 60여명 중 절반 이상을 다 내보낸 것이다. 표면적인 인사 이유는 시청률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아이템은 재미가 없어서 시청률이 낮다’며 못하게 한다. 그러나 「PD수첩」 시청률은 평균 8%를 웃돌았다.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낮은 편이 아니다.
지금 시사교양국장과 사장의 이름이 주로 거론되고 있지만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임장혁 기자=「돌발영상」을 제작하고 ‘낙하산 사장’ 반대 운동을 벌이다 정직을 두 차례 당했다. 업무방해죄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도 선고받았다. 압박은 크게 세 가지로 진행된다. 사측의 징계·인사, 법을 앞세운 공권력의 탄압, 여러 경로로 전달되는 권력자들의 메시지다.
「PD수첩」의 경우를 보면 정권 초기엔 노조위원장·노조 등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나 단체가 제재를 받았지만 지금은 기자 개개인의 행위와 신변이 통제받고 있는 것 같다.


김진혁 PD=광우병을 다룬 ‘17년 후’ 편이 불방되는 소동을 겪었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인사가 났다. 하지만 당시는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리던 때라 운좋게도 ‘17년 후’ 방송이 재개될 수 있었다.
「지식채널e」는 엄밀히 말해 시사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사회를 직접 비판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도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루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언론을 ‘대한뉴스’ 수준으로 여기고 권력의 정책 홍보 도구로만 봤다.





최승호=공영방송의 사장 선임 구조를 바꿔야 한다. 현재는 청와대를 갖는 사람이 방송까지 먹어버리는 독식 체제다.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언론 자유보다 권력에 충성하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 사장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직 우리에게 배 열두 척은 있다. 정권이 바뀐 뒤 한 방에 바로잡겠다는 생각 하지 말고, 항구적으로 언론이 언론다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김용진=공정·객관·균형보도라는 저널리즘 원칙이 현장에선 되레 현업자를 옥죄는 통제 장치가 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학계가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가 터져나오는데) 언론이 계속 이명박 정권을 견제하도록 했다면 정부가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사프로그램 탄압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인 셈이다.


김진혁=많은 언론인들이 무기력하고 자괴감에 빠져 있다. 언론인들이 연대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어디 모여서 한 달에 한 번 막걸리 파티라도 하자.
오늘 이 자리도 중요한 대안이다. 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에게 ‘언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


임장혁=반값 등록금 시위하던 대학생들이 연행됐을 때 YTN은 ‘미신고 불법집회 대학생 연행’이라며 본질 가리기식 보도를 했다. 그러나 시청자 항의가 잇따르자 기사를 ‘등록금 시위하던 대학생 연행’으로 정정했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저희들에겐 큰 힘이 된다.
YTN 노조는 매일 회사 로비와 정·후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준다면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