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원 |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네 팔뚝 굵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은 본래 네덜란드 소년 한스 브링커가 제방에 구멍이 나자 자기 팔뚝으로 구멍을 막아, 비록 자신은 희생되지만, 저지대 주민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어째서 ‘그래, 너 잘났다’ 정도의 의미로 평가절하되었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이야기는 미국의 동화작가 메리 맵스 닷지가 펴낸 동화책에 실린 내용으로, 발표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종결되고 미합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 만들기’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스 브링커의 이야기는 아미치스가 이탈리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펴낸 <쿠오레>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국민 만들기 차원에서 널리 유포됐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째서 이역만리 한국까지 퍼지게 됐을까? 일제에 의해 황국신민교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어린이 교육에 이용돼온 결과다. 다시 말해 일제강점기 장충단공원에 세워져 일본 군국주의 정신을 기리던 ‘육탄3용사(肉彈三勇士)’의 아동용 버전이었던 셈이다.
1932년 2월24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 상하이 특파원발로 육탄3용사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세 명의 병사가 제19로군이 구축한 진지 철조망을 돌파하기 위해 폭탄을 안고 몸을 던져 파괴했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2007년 7월13일 아사히신문은 75년 전 자신들이 했던 보도가 조작이었음을 시인하는 반성문을 게재했다.
당시 이 기사를 쓴 특파원은 현장에 가지도 않았고, 전선에서 돌아온 장교의 이야기만 듣고 꾸며낸 미담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3용사로 알려진 사람은 애초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철조망에 내던지고 재빨리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한 명이 쓰러져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다. 그러자 상관은 ‘천황과 국가를 위해 가라’며 노발대발했고, 상관이 두려워 되돌아간 세 명의 병사가 철조망에 도착했을 즈음 폭탄이 터졌다는 것이 사건의 실체였다. 그러나 군부는 단순한 사고사를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으로 선전하면서,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에게도 국가를 위해 죽으라고 강요했다.
지난 18일 MBC는 <뉴스데스크> 뉴스플러스 코너에서 ‘알통 크면 보수? 보수 진보 체질 따로 있나’라는 보도를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MBC는 편집 과정에서 실수는 있었으나 사실 보도에는 잘못이 없다고 해명했는데, 본래 연구가 주장하는 바는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남성일수록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적 주장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일 뿐, MBC가 보도한 것처럼 팔 근육의 두께와 그 사람의 신념이 진보냐 보수냐는 사실상 무관한 것이다.
(경향신문DB)
그런데도 MBC는 알통 둘레가 35㎝인 A씨와 32㎝인 B씨에게 저소득층 소득분배를 질문한 결과 A씨는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한 과도한 세금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B씨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하면서 “알통이 굵은 사람이 보수에 가깝다”고 무리한 연결을 시도했다.
이는 근력과 정치적 의사결정의 상관성을 밝히려는 연구를 마치 팔뚝 굵으면 보수고, 팔뚝이 가늘면 진보라는 식으로 ‘보수·진보’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결과일 뿐이다. 비록 MBC의 해명을 모두 받아들이더라도 앞서 미담과 교훈으로 포장된 한스 브링커의 이야기가 대중의 통찰에 의해 결국 ‘그래, 너 잘났다’란 의미로 비하된 것처럼,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그동안 MBC가 보인 수많은 그릇된 행태들은 이 해프닝을 MBC 스스로 자신의 팔뚝이 굵다, 굵어도 너무 굵다고 자인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 것이다.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는 “99%의 진실에 1%의 거짓을 섞으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 했는데 지금 MBC는 몇 퍼센트의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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