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에는 이전과 사뭇 다른 것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 기술이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는 것이다. 히로시마의 3배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고 이제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가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단거리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면 남한 전역이 핵무기의 사정권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따라서 이제는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는 주장도 한다. 물론 지나친 우려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북한의 핵 기술이 상당 정도 진화했다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막아내지 못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이냐는 점이다. 경향신문의 보도는 이 같은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 핵 문제의 근저에는 남북한을 포함한 미, 중, 일, 러 등 관련국들 간 이해관계의 동학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본질 및 해법에 대한 분석 역시 그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그러나 경향의 보도는 핵실험과 이에 대한 관련국들의 반응이나 대응을 보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각국 정부의 입장을 발표된 내용이나 뒤이은 조치들을 중심으로 설명하는데 이 같은 정보만으로는 관련국들의 한반도를 둘러싼 숨은 이해와 그 역동적 상호관계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 군인들이 3차 핵실험 성공 축하집회 (경향신문DB)
우리의 대북정책에 관한 심도 있는 점검 또한 미흡하다. 북한의 핵실험 문제는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취해야 할 대북정책의 기조가 무엇인지에 관해 다각적인 분석과 논의가 필요하다. 경향은 남북 상호 간 강경대응의 문제와 평화적 해결의 필요성에 대해 보도한다. 그런데 논의는 원론적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핵무장과 관련해 강경론자들이 무책임하다고 역설하거나 주장의 허점을 비판하는 정도이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평화체제에 관한 내용은 지면의 일부에서 잠시 논의될 뿐이다. 면밀한 분석과 구체적 대안이 없는 경우 명료함을 특성으로 하는 강경론과 상호 비난 속에 동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이분법적인 진영논쟁을 확산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얻어내기 어렵다.
핵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내부에 관한 분석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못했던 문제도 있다. 북한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는 북한의 국제무대 등퇴장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진다. 핵실험과 로켓 발사 등이 있으면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하지만, 평상시에는 일상적 관심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이로 인해 때로는 북한이라는 정치군사적 변인이 고려되지 않은 채 동북아 정세가 논의되는 단순오류를 범하는 경우마저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미국과 동북아의 정권교체기 우리 언론의 보도에서 북한이 동북아 정세와 관련된 변인으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하자 언론은 다급히 북한을 주요 변인으로 한 정세 분석에 골몰했다. 이 같은 문제는 북한이 연구와 취재를 하기에 극단적으로 어려운 사회라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증폭되어 나타나는 것은 북한의 고립성이 언론의 사건지향성과 결합하면서 북한 내부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사안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관련 보도는 ‘진부한 뉴스’의 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의 분주한 움직임이나 연이은 대북 비난성명, 위험의 정도에 대한 논란과 정치적 논쟁이 있어 지면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을 분석하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않은, 정해진 뉴스 틀에 맞추어진 사건지향형 보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1·2·3차 핵실험 모두 내용은 다양해 보이지만 정리해 보면 핵실험 사실, 기술과 위협의 수준, 한국 정부 및 미국 등 관련국의 반응 및 대응, 한국과 미국 등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이한 논쟁, 유엔 안보리 제재, 우리 경제에 대한 전망 등으로 요약된다. 뉴스의 틀은 대부분 단선적 담론의 범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극과 반응’ 구도의 사건 전개가 지속되고 이를 받아 주요 기사로 삼는 언론보도가 반복되면서 눈앞의 뉴스를 뛰어넘는 심층적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다. 1·2차 핵실험을 포함한 북한발 위기에 관한 기사들은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지면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3차 핵실험에 관한 보도는 얼마를 지속할지 모르지만 본질과 원인이 아닌 사건을 쫓는 보도로는 긴 호흡의 보도와 논의를 이어가기 어렵다.
몇 년을 주기로 유사한 사건이 기술적으로 진화하며 3차례나 반복되었고 그 정치군사적 의미는 확장되고 있다. 사안의 구조적 동역학과 해결책에 대한 공론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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