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어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원안 처리를 위한 3대 선결 요건을 제시했다. 공영방송 사장·이사 임명요건 강화와 언론 청문회 개최, MBC 김재철 사장 사퇴 등이 그것이다. 우회적 방법이지만 방송을 장악할 의지가 없다는 행동을 상징적으로라도 보여주면 법안 처리에 협조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권은 조직법 개편안과 방송사 사장 선임은 무관하다는 등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민주당의 제안은 나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인·허가권이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가면 방송의 공공성이 무너질 것이란 입장을 보이다가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수용하겠노라 작정한 것 같다. 당 일각에서 당론은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할 만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예고 등 국내외적 정세를 감안해 한발 물러서겠다는 설명을 들으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여권의 방송장악 의지에 대한 의심을 푼 건 아니지만 선언적 조치라도 취해준다면 일단 믿어보겠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자면 물러설 수 있는 명분을 달라는 얘기다.
민주당 정부조직법 개편안 양보 (경향신문DB)
우리가 주목하는 대목은 여권의 거부 논리다. 방송사 사장 선임과 정부조직법은 별개라는 청와대의 논리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조직법 대치의 핵심은 바로 SO의 인·허가권에 있다. 여권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SO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 정도로 우기고자 하는 눈치지만 현실은 다르다. SO는 자체 프로그램으로 지역 뉴스를 전하고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 토론회 및 연설방송을 내보낼 수 있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한마디로 작은 방송국이다. 공영방송이기를 포기한 듯한 MBC 사태나 대선 과정에서 보수 일색의 편향을 보인 종편을 보며 방송 중립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한 야당이다. 야당의 이러한 우려마저 외면하려는 것은 협상에 임하는 자세가 아니다. 야당의 일방적인 항복 요구일 뿐이다.
정부조직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는 여권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협상 과정만 해도 야당이 끊임없이 대안을 제시하는 데 비해 여권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아니, 방송 장악 의지를 숨기려다보니 퇴로가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물며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내부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내놓은 대안을 즉각 거부하는 것은 공영방송도 모자라 SO까지 장악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고도 방송을 장악할 의지가 없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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