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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사설]KBS는 현대사 다큐 졸속 추진 중단해야

KBS가 다음달 개편 예정으로 현대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졸속으로 밀어붙이다 일선 PD들과 노조의 반발에 부딪혔다. 현대사 다큐라면 충분한 내부 토론을 거쳐 제작돼야 하지만 이런 관행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KBS는 <그때 그 순간> 또는 <격동의 세월>이란 가제의 다큐를 신설해 토요일 황금시간대인 저녁 8시에 내보낸다는 계획이다. 그 준비는 올 초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과정이 너무 불투명하다. 우선 논란의 소지가 많은 현대사 문제를 다룰 정규 프로를 외주제작사에 맡긴 것부터 이례적이다. 그것도 몰래였다. 이 때문에 다큐멘터리국에서는 아무도 몰랐고 외주제작국 PD와 CP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KBS PD 58명은 지난 8일 성명을 내 “중차대한 역사프로를 군사작전 하듯 몰래 준비한 경우는 어떤 방송사에서도 없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KBS PD협회는 그제 총회를 열고 졸속적 현대사 프로그램 신설을 보류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PD들은 현대사 프로그램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절한 절차를 거쳐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측은 이럴 때마다 ‘프로그램을 보고 말하자’고 했지만 결국 편파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1년 KBS가 만든 이승만 다큐에 ‘건국 대통령’ 미화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을 기억한다. 당시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방송을 관철했지만 내용은 이 인물의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조명한다는 기획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자체가 이승만 미화였기 때문이다. 


KBS 이승만 다큐방송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 (경향신문DB)


KBS의 이번 다큐도 정치적인 기획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앞서 지적했듯 논란 많은 현대사 다큐를 은밀히 속도전으로 제작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기획의도에 ‘박정희 신화 만들기’가 숨어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지난 정권에서 KBS의 독립성과 공영성은 크게 취약해졌다. 제2 새마을운동, 제2 한강의 기적을 자주 입에 올리는 새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현대사에서 박정희 집권 18년의 궤적은 중요한 부분이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금이 박정희 시대를 미화할 적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정권과의 교감 여부와 상관없이 ‘알아서 기기’로 그럴 수도 있다. 


사측은 이 다큐가 “정권홍보를 목적으로 편성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은 이 말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린다. 이런 속도전은 접는 게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