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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사설]SBS ‘짝’ 출연자 사망, 방송사는 책임 없나

SBS의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 <짝>에 출연한 여성이 촬영지의 숙소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출연자 전모씨는 ‘너무 힘들어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신변을 비관하는 일기를 남겼다고 한다. 경찰이 수사 중인 상태에서 방송사 측의 프로그램 제작·진행 방식과 전씨의 죽음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씨가 친구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등을 살펴보면 방송사 측의 제작 방식 등으로 인해 전씨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잖게 추정할 수 있다.

전씨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작진은 그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려 했으며, 울거나 약한 모습을 바란 것 같았는데 오히려 씩씩한 모습을 보이자 당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친구가 그런 것이 부담이 됐는지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화장실 앞에까지 쫓아와 힘들다’ 등의 문자를 보내왔다”고 증언했다. 제작진이 전씨를 모델로 ‘특정 주제 짜 맞추기’를 하려 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SBS <짝> '애정촌'의 배경인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모운동(募雲洞) 마을 (출처: 경향DB)


2011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과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외모와 학력, 재력으로 배우자감을 평가하는 풍조를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또 ‘애정촌’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6박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차지하도록 무한경쟁을 벌이게 하는 방식은 출연자들에게 격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젊은 남녀가 몇 년에 걸쳐 경험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희로애락을 며칠 만에 압축적으로 겪게 했던 것이다. 이번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늘 잠복해 있었던 셈이다.

SBS는 5일로 예정됐던 <짝>을 방영하지 않았다. 또 보도자료를 통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유족들과 출연자들을 위로했다지만 그런 정도로 마무리할 일이 아니다. 경찰 수사가 나오는 대로 관련자 문책과 프로그램 폐지 등을 포함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다른 방송사들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예능 프로그램 전반의 윤리적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불륜 현장을 덮쳐 배우자와 연인들이 서로 육탄전을 벌이게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다. 시청률이라는 주술에 묶여 계속 막장으로 치닫다가는 제2, 제3의 사고가 잇따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