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언론사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공정방송 회복을 요구하며 MBC가 파업에 들어간 지 22일로 114일째를 맞았다. KBS는 78일, 연합뉴스는 69일째 파업을 벌이는 등 한국 언론이 ‘비상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사태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학계와 전문가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 이명박 정부가 낙하산 사장을 퇴진시킬 리 만무하고, 사태 해결에 나설 중재자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BC·KBS·YTN과 연합뉴스는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우선 요구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 노조는 “이 대통령 캠프 출신들이 방송사 사장으로 줄줄이 내려오면서 언론 본연의 비판기능이 사라진 대신 편파·왜곡 보도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의 낙하산 사장이 퇴진하지 않는 한 공정성과 독립성을 논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장 임명권을 가진 정부는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지만 “방송사 파업은 내부 문제”(이계철 위원장)라며 팔짱만 끼고 있다.
방통위는 KBS 이사 11명 전원을 추천하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을 여야의 추천을 받아 임명한다. 방통위는 YTN의 채널 허가권도 갖고 있다. 사실상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새누리당의 방치도 파업 장기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언론사 파업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야당이 언론장악 불법사찰 문건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남표 성균관대 교수는 “노사 간 임금협상 결렬에 따른 파업이 아닌 만큼 고용노동부가 나설 수도 없고 중재자가 없다. 여야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손익계산부터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와 국민들의 파업 체감온도가 예전과 다른 것도 파업 장기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언론학자들은 4·11 총선을 앞두고 언론사마다 연이어 파업에 나섰지만 주요 이슈로 부각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과 비판기능 축소에 대한 사회적 여론 형성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트위터, 블로그 등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변하면서 시청자들의 선택권은 넓어졌다. 다채널 온라인 미디어로 시청자의 불편이 적어진 만큼 지상파 언론 독립에 대한 위기의식은 그만큼 무뎌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과거 언론사 파업과 비교할 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1992년 MBC 파업은 당시 손석희 앵커가 구속되고 백지연 앵커가 뉴스 진행에서 쫓겨나면서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시각은 달랐지만 보수언론으로 불리는 조선·중앙·동아일보 역시 신속한 보도에 나섰다.
정권 말기 파업에 나선 노조에 대해 일부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언론 민주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보다는 ‘사장 교체’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식의 논리에 시청자들의 호응이 떨어졌다는 인식도 적지않다.
상지대 김경환 교수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방송사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국회가 나서 낙하산 사장이 발붙일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파업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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