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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종편, 신문 앞세워 광고 대신 은밀한 '협찬'에 목매

“종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송에서 저녁 뉴스로 때리고, 그 다음날 모기업 신문이 받아서 또 때리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눈에 훤합니다.”(한 대기업 광고담당자)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의 종합편성채널 및 연합뉴스 보도전문채널이 매체설명회와 함께 직접 광고영업을 시작하면서 광고시장이 술렁대고 있다. 대기업 광고담당자들은 “종편 시청률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문시장 점유율을 앞세워 터무니없는 광고·협찬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편의 직접 광고영업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틈을 타 종편들이 직접 광고영업을 시작하면서 대기업들은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대기업의 광고예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5개 종편·보도채널이 가세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 종편이 왜 협찬에 매달리나

연말 개국을 목표로 한 종편이 일찌감치 광고·협찬 영업에 나선 것은 드라마 제작에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이다. 종편은 정상적인 광고영업보다 협찬에 매달리고 있다.

협찬은 TV 프로그램에 기업의 로고나 상품을 노출시켜 주는 조건으로 일정 액수의 돈을 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외견상 노출 비용일 뿐 실상은 “그냥 돈을 달라”고 하는 조폭식 영업수단이라는 게 광고담당자들의 얘기다.

대기업의 한 광고담당자는 “방송 광고는 시청률이 주된 잣대”라며 “그러나 종편은 아직 개국을 하지 않은 상태라서 초당 광고료를 책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종편이 협찬에 목을 매는 것은 대기업에서 편하게 돈을 챙길 수 있다는 장점 외에 현실적인 속사정도 있다. 최근 광고주협회가 방송 관계 전문가들을 상대로 종편의 예상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것도 협찬 쪽에 치중하는 이유다.

케이블TV의 경우 평균 시청률이 1% 수준이면 연간 광고 규모는 1000억~12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종편은 당분간 평균 시청률이 0.5%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수준이라면 종편 한 곳당 연간 광고는 500억원이 안된다.

그러나 종편 하나를 꾸려가는 데 필요한 돈은 최소 1500억원 수준이다. 정상적인 광고영업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종편이 협찬에 무리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대기업 홍보 임원은 “KBS나 MBC 9시 뉴스 시청률은 16~17% 수준을 웃돌고 일반 프로그램도 7~8%대”라며 “그러나 종편은 케이블TV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1%에도 크게 못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기준대로라면 기존 공중파TV에 비해 종편 광고비는 턱없이 낮게 줄 수밖에 없지만 종편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광고 담당자도 “공중파TV는 협찬을 요구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면서 “시청률이나 맨파워로 승부가 안되는 종편은 기존 신문시장에서 해왔던 구태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종편이 노리는 또 다른 수익원은 장소 협찬과 PPL(영화나 드라마에 특정회사 상품을 등장시키는 광고) 같은 간접광고다.

공중파TV의 PPL은 제품을 화면에 얼마나 노출시키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드라마 1편당 보통 1억~3억원을 받는다. 장소 협찬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 때 배경 화면으로 특정 회사를 노출시켜 주는 조건으로 5억~10억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PPL도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일반 광고에 비해 단가 조정의 여지가 많아 종편으로서는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이다.

■ 삼성을 굴복시켜라

국내 최대 광고주인 삼성그룹 홍보·광고담당 임원 방에는 종편 광고담당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종편 광고담당자들은 삼성 홍보담당 임원 방에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수재의연금을 낼 때 다른 대기업들의 바로미터가 된다. 삼성이 100억원을 내면 현대자동차와 LG·SK가 그에 맞춰 일정액을 내는 방식이다. 종편도 삼성의 광고·협찬 액수에 따라 다른 대기업의 액수가 정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5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종편에 대한 대략적인 기준을 정해야 다른 기업들도 그에 맞출 수 있다”면서 “종편이 삼성에 목을 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광고담당 임원은 “삼성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종편이 삼성과 협상이 끝난 뒤 ‘삼성이 이만큼 했으니, 너희들도 이만큼 하라’는 식으로 요구를 해올 게 뻔하다”고 말했다.

정작 삼성그룹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최근 종편이 직접 영업에 나서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기존 공중파TV들도 “우리도 협찬을 달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편은 삼성 외 다른 대기업의 경우 광고·홍보담당 임원들을 수시로 접촉하며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 신문에서 종편으로 옮긴 보도국 기자들을 중심으로 주요 광고주들을 만나 “앞으로 좀 도와달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부 종편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우리 편이 될래, 적이 될래’라며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광고·홍보 예산이 한정돼 있어 종편에 할애해줄 광고 예산이 별로 없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종편을 무시하자니 후환이 두렵고 들어주자니 돈이 없어 진퇴양난”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모기업인 신문이나 통신이 종편의 광고를 따기 위해 기사로 압박해 오는 경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이미지나 총수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해당 매체들이 해왔던 방식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준기 기자 jk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