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천안함 민·관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은 지난 5월20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합조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투명 박스에 어뢰추진체를 넣어 전시했고, 각종 사진·도면과 그래프, 천안함 침몰 관련 CCTV 영상과 수중 폭발 시뮬레이션을 담은 비디오 영상을 내놓았다.
김수철 숭실대 미디어학부 연구교수는 합조단이 제시한 천안함 규명 증거와 기자회견·언론매체를 통한 시각적 재현 과정 등을 ‘미디어 스펙타클(media spectacle)’로 놓고 분석한 논문 ‘위험(Risk)의 시각화 : 천안함 사건에 대한 시각 문화적 고찰’을 최근 냈다. 국가의 ‘지식-권력’이 과학적 지식의 심판자로 나서 천안함 사건으로 ‘위험 담론’을 만들었다는 게 요지다.
지난 5월20일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서 어뢰 파편과 어뢰 도면 등을 북한 공격의 증거물로 제시하고 있다. 김수철 교수는 정부가 ‘공격 어뢰 침몰’을 뒷받침하는 시각 자료들만 증거로 제시하면서 과학 지식과 위험 판단의 유일한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 교수는 국가의 과학적 태도 문제부터 지적한다. 정부 발표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합리적·상식적 의문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수집 증거 중에서 ‘공격 어뢰 침몰’을 뒷받침하는 자료만 제시했다. 김 교수는 “‘증거의 문화정치학’이라는 시각에서 봤을 때 천안함 사건은 심각한 재현의 위기를 보여준다”며 “이 시대에 과학적 증거의 요건,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과학적 논증이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재현 방식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고 했다. 과학 지식과 군사 정보 기밀이 사용되고 제시되는 방식과 관련, 과학 지식의 권위와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의문이다.
김 교수는 “천안함 사건에서 국가 ‘지식-권력’은 무엇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면서 다양한 논쟁·토론 과정을 거치기보다 과학 지식과 ‘위험’ 판단의 유일한 권위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했다”며 “위험 판단의 기준을 독점하면서 과학 지식의 심판자가 되려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천안함 사건 발표를 국가의 과학적 증거에 대한 헤게모니적 접근 사례로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이를 밝혀내기 위한 조사 발표가 아니라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고 잠재우기 위해 과학적 지식·논증·증거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공개한 천안함 침몰 직전 CCTV. 국방부는 침몰 직전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며 침몰을 갑작스런 외부 공격 때문이라는 근거로 이 CCTV를 공개했다.
국가 ‘지식-권력’은 사람의 눈길을 끌만 한 시각적이고 기술적인 증거들만을 특권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CCTV 영상 이미지들이 진실의 실체를 밝혀줄 것이라는 기대감은 ‘사진적 진실’이라는 19세기 실증주의 개념에 바탕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영상 이미지는 매개체(합조단)의 아무런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 객관적·과학적인 하나의 실체이자 진실로 보이게 하려고 만든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합조단은 정확한 시뮬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제시하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밝혀질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며 “과학적 지식의 시각화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은 여러 가지 조건에 맞춘 다양한 데이터들이 정확하게 입력되어 일정한 프로그램에 따라서 실제 현실을 재현하는 듯 보인다”며 “하지만 해석을 필요로 하는 시뮬레이션은 비과학적·주관적 개입에 배제되었다는 착시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5월20일 기자회견에서 합조단의 시뮬레이션 설명 모습. 사진 출처 : 국방부
천안함 생존자나 목격자들의 증언이 생략되거나 최소화된 문제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천안함 선체가 발견되기 전에 이루어진 4월7일 기자회견에는 생존자들이 한 시간 이상 기자 질문에 답했고, 생방송으로 중계됐다”며 “하지만 5월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생존자들이나 이들의 증언·증거는 하찮게 여기거나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방부(국가 권력은)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쥐고서 필요에 따라서 정해진 결론에만 걸맞은 정보들을 선별적으로 공개하고 나머지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들은 군사기밀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핵심적 주도권을 행사했다”며 “국가 권력, 특히 군사 권력은 정보의 독점, 선택적이고 임의적인 정보 공개를 통해서 적절한 비밀과 부적절한 비밀, 적절한 증거와 부적절한 증거, 적절한 과학 지식과 부적절한 과학 지식 사이를 구분 짓는 기준을 독점하려 했다”고 말했다.
‘위험사회’ 개념을 제기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권위주의적 테크노크라시’ 경향도 나타났다. 김 교수는 “산업사회에서 생태적 위험이나 정당성의 위기 상황에서 기존의 기술적 지식이나 전문성에 의존하는 보수주의적인 위기 대처 방식을 지칭하는 개념”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과 2008년 광우병 사태에서 권위주의적 테크노크라시로 통치의 정당성을 강조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jomos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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