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경희대 영문과 교수
왓비컴즈의 정체도 드러나고, 문제가 되었던 학위증도 만천하에 공개되었지만, 타진요는 여전히 무용한 증거를 붙들고 자신들만의 진실을 주장하고 있다. 이 현상은 분명 어떤 증상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인데, 나는 이게 그 무엇도 아닌 미국 학벌에 대한 숭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타블로도 이런 미국 학벌에 대한 숭배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인데, 지금부터 이 사실에 대한 지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양심 있는 언론이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인터넷의 유령을 붙들고 굿판을 벌일 것이 아니라 이런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문제를 다루려는 자세를 보여줘야할 것이다.
타진요의 논리적 오류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추론을 해보면 이렇다.
1. 타블로라는 힙합이나 하면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실없는 소리나 해대는 밉상이 있는데, 스탠퍼드를 졸업했다고 한다.
2. 경험상(또는 상식적으로) 미국의 명문이라고 하는 스탠퍼드대학의 시스템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다.
3. 그러므로 이놈은 아예 스탠퍼드를 들어가지도 않았으면서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 삼단논법을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왓비컴즈의 ‘증거’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증거들이 모두 믿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이제 타진요가 자신의 진실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는 소진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남은 것은 자신들을 확신으로 밀고 갔던 그 열정의 추억인데, 이것이 바로 ‘공백의 기억’을 구성할 것이다. 말 그대로 공백은 국가나 법의 재현체계로 포섭될 수 없는 ‘의심의 언어들’이 분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백이라고 그러니 거창하게 보이지만, 바로 인터넷 공간이야말로 한국에서 공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이라는 ‘공론의 장’은 좋고 나쁨이라는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넘어서 작동하는 객관적 상황이다. 이번 타블로 사건의 귀결은 궁극적으로 인터넷에 쏟아져나왔던 방황하는 공백이 국가라는 메타재현체계에 고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이번 타블로 학위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들도 타진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사실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왓비컴즈라는 ‘과잉의 주체’가 어떻게 본인들 스스로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고 믿는 이들을 ‘사드적 주이상스’의 경계로 나아오게 만들었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왜 라캉을 요청하고 있는지, 이번 사건이 다시 한 번 말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택광 교수 블로그 에 오른 글을 이 교수 양해 글을 얻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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